오늘로 이 기차를 내리는 날이다. 꼬박 49시간을 탄 것인데, 시차를 감안하면 53시간이 된다. 노보시비르스크는 모스크바와 시차가 3시간으로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 4시간의 시차가 난다. 내가 잘못 안 것인지 인터넷이 잘 못 알려준 것인지...덕분에 한국과 2시간 시차이다.

막상 기차의 화장실을 써보니 그렇게 불편하지는 않다. 물론 80여명의 사람이 볼 일과 씻는 일과 컵 등을 설겆이하는 일까지 따지면 항상 화장실은 사람이 있다고 봐야겠지만 일찍 씻고 늦게 씻으면 큰 불편함은 없다. 뜨거운 물은 항상 펄펄 끓는 물을 준비해 놓기 때문에 커피를 타 마실 수 있다. 여기 사람들이 차를 많이 마시기에 뜨거운 물을 충분히 준비하는 것 같다. 중국도 그렇고 차문화 발달한 문화는 뜨거운 물을 얻기 쉽다.

앞의 초등학생 남자아이 둘을 데리고 탔던 가족은 밤 12시쯤 기차에서 내리고 2, 3살쯤 되어 보이는 꼬마 여자애를 데리고 부부가 앞자리에 탄다. 그 때 나는 몇 가지 도움을 주고는 누워서 잠이든다. 자리 잡느라고 부시럭 거리는 소리, 꼬마 여자아이의 울음 소리가 귀찮게 느껴지지만 어느 정도 적응을 해서 크게 무리 없이 잠이 든다. 아침에 깨어보니 5시경이다. 조심스럽게 일어나 씻고 자리에 앉아 창밖을 본다. 커피 한 잔을 타서 두 시간 가량 넋 놓고 창밖을 본다. 어느 덧 기차에서의 하루 일과가 됐다. 모두 자고 있는 시간에 날이 밝아서 창밖이 잘보이는 조용한 이시간이 가장 좋다. 지금까지 2일을 넘게 기차는 달리고 있는데 창밖은 변함이 없다. 도대체 산이라고는 아직 못봤다. 그러고 보니 알마티 이후로 산을 본 기억이 없다. 이놈의 나라는 평원만 있다. 가끔씩 보이는 민가는 전혀 기대하지 않는 장소에 10여채의 집들이 모여있는 정도이다. 가끔 큰 마을이나 도시가 나타나 기차가 정차하여 내려보면 우리나라 소도시 보다도 작아보인다. 가끔 기차 창문까지 말린 생선이나, 간식거리, 과일, 기념품을 팔기 위해 장사치들이 들락거린다.

아침은 간단한 빵과 말린 빵을 먹는다. 점심은 정차한 역사에서 피자빵을 사서 휘와 먹는다. 맛은 별로 없다. 다음에 기차를 타게 되면 준비해야 할 것들이 이제는 눈에 보인다. 그리고 밖에서 사는 것과 역 플랫폼 매점에서 사는 음식의 가격 차이가 거의 없어서 편안하다. 구지 무겁게 물과 음료를 잔뜩 사가지고 탈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그리고 역무원이 식사 시간이면 빵 종류를 다양하게 가지고 다니며 판다. 물론 역무원실에서 과자며, 음료, 컵라면까지 팔고 있다. 적어도 돈만 가지고 탄다면 굶지는 않아도 된다.

도착하기 3시간 전쯤부터 몸이 근질근질하다. 빨리 내리고 싶다. 목표점에 다가와 오니 내리고 싶은가보다. 기차안이라 운동량은 거의 없다. 의자에 앉아 창밖을 보거나 누워서 책이나 만화를 보거나 자거나, 먹거나 그 것들 중 하나이다. 신선 놀음이 따로 없다. 앞에 여자아이는 번잡하다. 그 만할 때의 휘나 슬이가 생각난다. 그래도 여자이이(이름을 잊었다)는 내가 웃거나 표정을 지어주면 까르르 웃어서 예쁘다. 그래도 정류장에서는 3G가 터져서 잠깐이라도 인터넷으로 한국 소식을 접할 수 있어서 반갑다.

여기 시간으로 6시가 넘어서 기차에서 내린다. 짐을 챙겨넣고, 기차에 타면서 보급받은(물론 미리 기차표를 구매하면 같이 결재한) 수건, 배개보, 침대커버, 덮는커버를 반납한다. 일단 노보시비르스크는 기차를 50시간 타고오면서 본 가장 큰 도시처럼 보인다. 왠지 갑자기 시내에 온 것 같은데 잠깐 둘러본 봐로는 사실 알마티 보다도 시골이다. 큰 오비강을 끼고 있는 강변 도시이기도 하다. 역을 나와서 호텔을 찾아보니 역 앞에 노보시비르스크에서 가장 큰 건물처럼 보인다. 4성급 호텔임에도 그렇게 정이가는 호텔은 아니다. 일단 직원이 불친절하다고 해야 할까 무뚝뚝하다고 해야 할까, 좀 인상이 좋지 않다. 물론 4성급 호텔이니 영어는 어느 정도 한다. 트윈 침대를 미리 예약했음에도 킹사이스 원 침대 밖에 없단다. 그럴리가... 아무튼 서비스는 4성급이 아닌 2성급이다.

일단 모레 밤늦게 다시 기차를 타고 이루츠크로 떠난다. 노보시비르스크는 제법 큰 도시에 유서가 있는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오는 동안 보았던 조용하고 휴양지에 가까운 도시에서 묶는게 좋았을 것 같다. 도시가 우중충한게 특색이 없다. 물론 내일 돌아다녀봐야 겠지만 그래도 지하철이 있다. 러시아는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지역 격차가 심해지는 느낌이다. 휘는 알마티가 가장 정이 갔다고하고 나는 상트페테르부르크가 가장 맘에 들었다.

휘와 오랫동안 기차안에서 빵쪼가리와 사발면을 먹었으니 맛난걸 먹어보자고 제안한다. 왠지 힘도 들어서 호텔내 레스토랑을 갈지 호텔 옆에 있는 스시집에 갈지 결정을 하라고 했더니 스시로 결정을 한다. 제법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다. 스시(그래봐야 진짜 회가 아닌 초밥이고 그 것도 김밥과 연어를 얹은 것과 장어를 얹은것이 다지만) 세트를 주문하고 휘는 돼지고기가 들어간 면요리를 주문한다. 일본식 라면이다. 나는 베트남 비빔 쌀국수를 주문한다. 스시는 일반적인 맛이었고 바다가 먼 이곳에서 신선한 생선은 무리일 것이다. 라면은 의외로 괜찮았다. 베트남 쌀국수는 별로였다. 생맥주 두 잔과 콜라 한 병을 먹고 1,500 루불을 지불한다. 현재 환율로 28,000원 정도이다. 둘이 잘먹고 내일 비가 오지 않는다면 킥보드를 타고 시내와 강변을 나가 볼 계획을 세운다.
Posted by 휘슬호
:

5시 알람 소리에 휘와 동시에 눈을 뜬다. 몸은 무겁지만 정신은 무겁지 않다. 여행이 주는 긴장감은 신체를 뛰어넘는다. 연일 20,000보 이상을 걷고 있음에도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제 저녁에 짐정리는 어느정도 끝냈고 간단한 세면만 한다. 어제 저녁 체크인도 끝낸 상태, 프론트 직원에게 택시를 부탁한다. 첫날 체크인을 도왔던 여직원이 있어서 많은 도움을 준다. 이 친구 참 친절하다. 택시가 도착하지 않자 도로까지 나와서 택시 타는 것을 봐준다. 새벽의 호스텔 앞은 토요일을 밤새 클럽에서 놀았는지 꽃을 든 예쁘게 차려입은 아가씨들이 웃고 떠들고 있다. 택시 기사는 가격 흥정이 맞지 않는지 공항으로 이동하면서 여직원과 기사가 통화하고 우리를 바꿔주고한다. 여직원은 공항까지 1,250tz + 콜비400tz를 주라고한다. 처음 도착했을 때 택시비에 비하면 엄청 저렴하다.

공항으로 향하는 새벽의 한가한 도로는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든다. 도로가 한가해서 생각보다 빨리 공항에 도착한다. 기사에게 2,000tz를 주고 내린다. 거스름돈을 챙기는 것을 보고 그냥 넣어두라고 몸짓으로 표현한다. 기사는 고개까지 숙여가며 고맙다고 한다. 어차피 남아있는 텡게 쓸 일도 별로 없다. 공항에 와보니 지갑에 1,500tz가 남아있다. 지금도 지갑에 그대로 남아있다.

공항 직원들은 친절하고 일처리도 빠르다. 한국에선 큰 문제 없었던 보조배터리를 이 곳에서는 꼼꼼이 확인한다. 그리고 항공셔틀을 타고 우리가 타고갈 비행기까지 간다. 휘는 활주로를 버스로 타고 가서 비행기에 계단으로 오르는 것이 처음이라고 한다. 셔틀에서 내려 주위를 둘러보니 알마티의 주위를 둘러싼 텐산의 위용이 장관이다. 이제 알마티와는 헤어진다. 처음이 어렵지 이렇게 적응하고 떠나려니 조금 아쉽다. 아들과 충분히 걷고, 충분히 느꼈던 도시이다. 때도 덜 묻고 친절한 사람들이 있었던 도시로 기억할 것이다.

다시 6시간 가까이를 비행한다. 8시25분 출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10시25분 도착이다. 그 중간 시차로 시간을 번다. 기내식과 맥주 두 캔을 먹고는 안대를하고 두 시간 가까이 잔다. 비행기에서 이렇게 잘잔 것도 오랜만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할 때까지 입국카드를 주지 않는다. 러시아는 입국시 입국카드를 별도로 작성하지 않는 모양이다.

배낭만 매고 찾을 짐이 없기에 가장 먼저 출국장으로 나온다. 휘는 약간 긴장을 한 것 같지만 기대감이 큰 모양이다. 일단 100불 환전을 하고 beeline 통신사를 택해 30gb 심카드를 12,000원 정도에 장착한다. MTC를 장착하고 싶었지만 풀포코 공항엔 MTC가 없다. 한국 통신비가 얼마나 비싼 것인지 알 수 있다. 구글 지도를 이용해 숙소를 찾아가야하기에 차선으로 beeline을 선택한다. LTE가 터져서 매우 빠른 인터넷을 사용이 가능하다. 버스를 타고 전철을 두 번 갈아타면 된다고 구글맵이 친절히 알려준다. 대략 3,40분 만에 숙소에 도착한다.

도착하여 또 이동 중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모습은 완벽한 유럽이다. 더구나 1700년대 차르 표트르 대제가 모스크바에서 이 곳으로 수도를 천도하기 위해 완벽한 계획도시로 설계되어 도로나 건물들의 형태가 훌륭하다. 내가 어려선 레닌그라드로 불리던 이곳. 1900년대 모스크바로 수도가 옮기기 전까지 약 200년을 제정 러시아의 수도였다. 각기의 개성이 있는 사람들이 여유있게 움직이는 모습이 근사하다. 그들을 보라 외모도 근사하지 않는가. 휘는 이제 동양인은 우리뿐이라며 두리번 거린다. 확실히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유럽의 영향권 도시이다. 이제 동쪽으로 우리가 움직임에 따라 중국, 몽골, 고려의 동양권 모습들이 섞일 것이다.

숙소는 Roses Hotel로 고풍스런 건물에 직원들의 영어도 훌륭하고 시설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그런데 내가 예약시 프로모션 할인 금액으로 예약을 해서 그런지 1명만 예약되어있다.

2명이 묶으려면 Extra Charge를 내야한다. 1,400루불을 추가 지불한다. 조식이 포함이고 커피와 차는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기에 괜찮은 조건이다. 휘는 방도 마음에 들어한다.

오늘 마린스크 극장에서 오페라를 예약해 놓은 것을 잊고 있었다. 가장 오래된 마린스크극장1은 우리가 있는 동안 일요일 말고는 볼만한 것이 없어 오늘 예약한 것이다. 발레를 보고 싶었으나 우선 극장을 선택하니 오페라를 예약하게 되었다. 푸시킨의 운문소설에 차이코프스키가 곡을 쓴 <예브게니 오네긴>을 7시에 보기로 했다. 배낭 여행자지만 최소한 예를 갖춰야 겠기에 긴반지를 입고 옷깃이 있는 젊잖은 스타일을 셔츠를 입는다. 휘도 마찮가지이다. 혹시 복장 때문에 입장 불가를 받지 않을까 했지만 특별히 복장을 지적하여 입장을 제한하지는 않는 것 같다. 다만 거의 대부분 여자들은 드레스 스타일을 남자는 양복 스타일의 옷들을 입었다. 극장은 그 자체로 골동품 같고 고풍 스러우며 화려하다. 선택할 수 있는 좌석도 거의 없었지만 일부러 극장 전체 분위기를 느끼려고 2층 앞부분을 선택했다.

막 오르기 조금 전에야 노란 단체복을 입고 어수선하게 입장하는 중국 학생 관람객을 제외한다면 분위기는 내가 원하던 그런 전통적인 오페라 분위기였다. 그런데 문제는 휘가 시차에 적응을 못하고 2막을 시작하면서 졸고 있다는 것이다. 에어컨 공기와 어울려 한기가 느껴지는데 웅크리고 불편한 의자에서 졸고 있으니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중간 3막 쯤에 퇴장하기로 하였다. 휘는 도저히 못견디겠다고 한다. 사실 말도 알아듣지 못하니 그냥도 관심이 없으면 졸음이 올만하다.

극장에서 나와 간단히 길거리 크레페로 요기를 하고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온다. 휘는 양치를 하고는 바로 잠이 들었고 10시인데도 환한 탓에 나는 잠시 밖에 나가 슈퍼에 들른다. 맥주3캔과 물, 오렌지 쥬스를 사려는데 카운터 여직원이 맥주를 가르키며 뭐라고 자꾸한다. 내가못알아 들으니 옆에 있던 사람이 이시간에는 맥주를 구입할 수 없다고 한다. 숙소에서 맥주 한 잔하려면 미리 사놔야겠다.

내일은 비가 오고 온도도 20도가 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Citytour 버스를 타려고한다. 11시가 넘어가면서 어둠이 서서히 내린다. 백야의 밤이다.


Posted by 휘슬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