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여름방학 둘 만 떠나는 두 번째 배낭여행이 오늘로서 마무리라고 봐야할 것이다. 내일은 아침에 일어나 공항으로 이동하여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일정이기에 실질적으로 러시아에서의 활동은 오늘이 마지막일 것이다. 특별히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저 휘가 조금 더 내 힘이 필요로 할 때 힘이 되어 같이 여행하는 것, 그것으로 만족한다. 나 역시 휘와 같이 이렇게 여행함으로써 많은 의지를 하고 있다. 휘는 이번 여행동안 작년보다 더 성숙한 모습을 보여줬고, 나도 크게 의지를 할 수 있어서 부자간에 정에 큰 도움이 되었다. 작년과 올해의 아들의 변화도 느낄 수 있었고, 좀 더 아버지로써 분발해야 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아빠로써 아들이 작년보다 많이 성장했구나를 느낀다. 작년 사진과 비교해 일단 키가 이제는 나보다 커지는 시기다. 이녀석이 이제는 걸을 때 나에게 어깨동무를 많이 건다. 많이 컸다.내년에도 아빠와 배낭여행을 하겠냐는 물음에 휘는 "글쎄요."라며 회피하고 있다. 작년, 올해 모두 고생을 많이 시켜서 그런가? 아님 이제는 방학을 또래들과 즐기고 싶은 걸까? 나 역시 이제 이런 배낭여행은 힘들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배낭을 짊어지고 이렇게 여행하는 것이 기간이 쌓일 수 록 힘에 부침을 느낀다. 물론 배낭만 짊어지고 다닐 뿐이지 호텔에서 자고, 특별히 돈 걱정 않하고 식사를 하는 이런 여행이 과연 배낭 여행인지도 모르겠다. 젊은 친구들 처럼 아끼고 많이 몸을 쓰며하는 여행은 무리라고 생각된다. 내년엔 딸을 데리고 여행을 해볼까? 아마 다음 여행부터는 조금은 더 편한 여행으로 변화하지 않을까 싶다.

아침 조식을 먹고와서 시내로 나가본다.

 블라디보스톡도 관광객을 위한 시내는 작다. 대부분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거래내에 있다. 중국인 뿐 아니라 한국인도 매우 많다. 러시아 여행 전체 일정 중 가장 난이도가 낮은 도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주변 상가나 식당 등이 중국인과 한국인을 많이 상대해본 노련함이 있다.

휘와 일단 독수리 전망대라 불리우는 블라디보스톡 해안가 가장 높은 곳을 올라가 보려한다. 전망대까지 케이블전차가 다닌다고 읽었는데 구글 지도로 전망대를 검색하니 걸어가는 길을 안내한다. 우리 부자 그것도 모르고 걷다가 이건 아닌 것 같아서 우리나라 인터넷 검색을 한다. 오늘은 하늘이 맑아서 매우 덥다. 러시아와서 가장 더운 하루이다. 역시나 케이블전차를 타는 곳은 Golden bridge 아래 도로 근처에 있다. 다시 휘와 내리막을 걷는다. 찾기가 어려워 지나가는 러시아 남자에게 케이블전차역 사진을 보여주자 가던 길을 되돌아 한 블럭을 같이 걸어가는 친절을 배풀며 타는 곳을 알려준다. 더운데 너무 고마워 둘다 고개를 숙여 "쓰바시바" 하며 인사한다. 러시아인들 많이 무뚝뚝하지만 깊은 속내는 따뜻하고 순진하다.

전망대 올라가는 케이블전차는 인당 편도 15루불이다. 사실 올라가는 높이는 별로 높지 않다. 다만 걸어가는 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전망대에 오르자 다리를 전망하며, 도시가 넓게 펼쳐진다. 오늘 시야가 좋아서 제법 근사한 풍경을 제공한다. 전망대에 오른 다른 이유도 있다. 여기 기념품샾이 물건이 다양하다고 해서 구경도 같이 할 겸 올라왔다. 물건을 구경하고 간단한 악세사리 몇 가지를 구입한다.

내려와서 버커킹에서 점심을 먹는데 주위가 온통 한국인이다. 여기 한국인이 정말 많다. 종로 버거킹인지 블라디보스톡 버거킹인지 헛갈린다. clever house에 들러 한국인들이 잘산다는 몇 가지 물품을 구입하고 숙소로 돌아온다.

휘에게 오늘 저녁은 전통 러시아식 샤슬릭을 먹자고 제안한다. 그리고 휘가 검색하여 데리고가라고 부탁한다. 저녁 무렵 츄다데이라는 샾에 가서 구경을하고 휘가 고른 러시아식 레스토랑에 찾아간다. 나름 트립어드바이져 점수도 높은 집을 잘 골랐다. 우리는 종업원에게 샤슬릭을 주문한다.

휘는 양고기 샤슬릭이 있냐고 물었는데 종업원이 있다고해서 양과 돼지 샤슬릭을 주문한다. 하지만 양은 없었고 뭔가 주문이 꼬여 돼지 샤슬릭 하나만 주문이 들어간 모양이다. 돼지 샤슬릭 하나에 포크가 두 개 나왔다. 이런 양고기를 기다리다 아무래도 잘못된 것을 눈치 채고 재주문을 하여 하나, 하나 따로 돼지 샤슬릭을 먹는다. 사실 맛이 없는 것은 아니였지만 비싸고 양도 별로이다. 내가 원한 샤슬릭은 알마티에서 먹은 바로 그 샤슬릭이었다.

휘 역시 알마티의 샤슬릭이 푸짐하고 맛도 훨씬 좋았다고 한다. 알마티 샤슬릭은 4,000원 정도에 정말 근사한 음식이 나왔었는데, 여기서 10,000원이 넘으면서 맛도, 양도, 비쥬얼도 재료 종류도 떨어진다. 다시 알마티에 가서 샤슬릭을 먹고 싶다. 물론 지금 알마티에서부터 다시 여행을 시작하겠냐고하면, 다리가 풀릴 것 같다.

숙소로 돌아와 짐을 정리한다. 이제 전자기기와 세면 도구만 배낭에 넣으면 끝이다. 내일 일어나 씻고 공항으로 공항철도를 타고 이동하면 저녁은 식구들과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어머니, 집사람, 슬이가 보고 싶다.

휘는 러시아 불곰국 형님들에 대해서 선입견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처음 러시아 여행을 제안했을때 뭔가 미지의 세계같은 느낌으로 응했다고 한다. 사실 휘에게 '다음 여행은 아프라카?'라고 하자 눈을 반짝인다. 지금은 러시아도 사람 사는 곳이고 좋은 사람이 많은, 두려움 보다는 친근함이 남는 곳이라 한다. 중국보다는 뭔가 야생적인 혹은 남성적인 느낌이었던 것 같다. 휘는 여전히 알마티가 가장 정이 간다고 한다. 우리 부자 여행 초기에 힘이 남아 가장 많이 돌아다녔던 곳도 알마티였고, 여러 사람과 부딪쳤던 곳도 알마티였다. 세련된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 중간 쉼 단계였던 노보시비르스크, 바이칼의 이루크추크, 아쉬운 하바롭스크 그리고 한국인이 많아서 반가웠지만 나중엔 살짝 불편함을 느꼈던 블라디보스톡까지 우리 부자 잘 다녔다.

가장 오래 머문곳은 누가 뭐래도 기차안이었다. 그곳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 모두 한 곳에서 자고, 먹고, 씻고, 싸고 1차적인 인간 활동을 같이한 사람들이다. 러시아인들은 예의도 있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것이 몸에 배어있는 사람들이었다. 내 생각과 실제가 많이 달랐던 사람들... 훨씬 좋은 사람들이었다. 아마 다시 시베리아횡단열차를 이렇게 오래 탈일은 없을 것이다. 이제는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던지 차량을 이용해 이동하겠지. 하지만 아마 평생 이렇게 오래 아들과 한공간에 의지하며 딱붙어 지내는 것은 이 기화말고는 앞으로 힘들 것이다. 좁은 기차안에 만 8일을 딱붙어 있었다. 그래서 아비로써 좋기도 했다.

아들의 청소년 시절 한 페이지를 둘만의 호흡으로 함께 할 수 있었어서 행복한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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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이 소란스러워 5시도 되지 않아 눈을 뜬다. 앞자리 할머니와 손녀가 아침을 먹고, 짐을 싸고 있다. 아직 블라디 보스톡에 도착하려면 3시간도 더 남았는데... 다시 잠을 자려고 하지만 쉽게 잠에 들지 못한다. 결국 6시경 완전히 일어나 씻고 창밖을 본다. 앞자리 가족은 우수리스크에서 내린다. 많은 사람이 우수리스크에서 내려서 나도 기차에서 내려 본다. 우수리스크 연해주의 도시이자 우리나라 고려인과 독립운동의 메카. 중국 하얼빈과 북한 두만강의 철로가 이어지는 중요 거점이다. 알기로 1900년대 이전에 러시아가 블라디보스톡을 부동항으로 개발하기 전에 가장 중요한 러시아 극동아시아의 중요 거점이었던곳. 발해의 유적이 있고 고려인 문화센타가 있는 곳으로 알고 있음에도 여행 말기인 오늘, 내일은 우수리스크를 둘러볼 기운이 나지 않는다. 여행 초기였다면 아마 오늘 부지런히 블라디보스톡을 걸어다니고, 내일 우수리스크를 둘러봤을 것이다.

이제 기차는 조용하다. 많은 사람이 내리고 종점인 블라디보스톡까지 가는 사람을 제외하면 더 타는 사람은 없다. 휘와 발을 뻗고 창밖을 본다. 그래! 시베리아횡단의 마지막을 아무도 없는 방에서 우리부자만 느긋하게 즐긴다. 이제는 기차밖 풍경이 우리나와 흡사하다. 산에 자라는 나무며 풀들이 마치 우리나라 무궁화 열차를 타고 창밖을 보는 것 같다. 우리나라와 가장 가까운 유럽 풍경이라는 블라디보스톡이, 꺼꾸로 내려오는 나에게는 한국과 가장 닮아있는 도시처럼 느껴진다.

기차가 멈추고 내린다. 드디어 9,259km의 단일 노선을 완주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합하면 10,000km. 먼 길이다. 기차에서는 특별히 하는 일도 없었건만, 어제부터 많이 지쳐있다. 아마도 여행의 끝을 바라보고 있으니 긴장이 느슨해지고 정신적으로 풀어져서 몸이 반응하는 것 같다. 비도 살짝온다. 확실히 블라디보스톡은 러시아에서 여름이 가장 더운 도시인가보다. 비가 살짝오는데도 습하고 덮다는 느낌이다. 다른 도시들은 이런 날씨에 쌀쌀했는데... 휘에게 중학생 시절 좋은 선물을 한 것 같아 뿌듯하다. 나중에 휘가 크면 다시 이렇게 단둘이 여행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 과연 휘가 20대에 친구들을 제치고 나를 데리고 여행을 계획해 줄까?

호텔을 찾아간다. 기차역에서 멀지 않다. 기차역 주변이 중심가이니 호텔의 위치도 좋다. 바닷가 바로앞에 제법 큰 호텔이다. 체크인은 준비가 필요하다고 해서 휘와 아침을 먹으러 나가본다. 아침을 부페식으로 먹고 싶은 것을 고르고 계산을 하는 역앞 식당에 들어간다. 가격만 비싸고 맛도 없다. 이곳 블라디보스톡은 중국 단체 관광객의 절정이다. 다른 도시들도 많았지만 여기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다. 거리거리마다 중국 단체 관광객들의 큰소리로 아찔하다. 더불어 한국인 단체 관광객도 많다. 그렇다 보니 길에 동양인이 많다. 특히 백화점이나 마트에 들어가면 온통 주위는 중국말이다. 백화점 보석 코너나 화장품 코너는 중국인이 점령했다.

블라디보스톡의 요트마리나에 가본다. 큰 마리나는 아니지만 우리나라 요트대회에서 자주봤던 타임머신이나 티뷰론도 계류해있다. 늘 ORC 우승을 다투던 요트들이다. 이렇게 본래의 자리에서 만나니 반갑다. 확실히 블라디보스톡은 수영할 수 있는 수온을 가진 유일한 바다, 러시아인들에게는 최고의 휴양지이다. 본국내 관광객들도 많은 것 같아 모처럼 북적이는 러시아를 다시 만난다. 모스크바 이후 가장 활기있는 도시처럼 보인다. 기차에서 볼 때는 우리나라와 많이 닮은 자연을 가졌다고 생각했는데 시내는 또다른 러시아이다.

1시가 넘어 체크인을 하고 룸에 들어가 샤워를 한다. 그리고 시내를 나가본다. 블라디보스톡도 사실 관광을 목적으로 찾을 만한 곳은 별로 없다. 다만 새로운 분위기와 맛과 풍경을 느껴보고 싶어하는 것 같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느끼고, 본 것이기에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큰 흥미 유발을 하지 못한다. 흔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붉은광장이라고 알고있는 중앙광장은 일요일인 오늘 자동차 오디오 튜닝 경연대회를 하는지 온갖 튜닝을한 자동차들이 귀가 떨어져라 노래들을 틀어놓고 자랑들을 하고 있다. Golden Bridge 밑에도 가본다.

나도 휘도 빨리 지치는 것 같아 제대로된 한국음식을 먹고 싶다. 트립어드바이져를 통해 가장 순위가 높은 한국 음식점을 찾아간다. 식당 이름은 Korea House. 트립어드바이져의 안내가 없다면 이런 곳에 식당이 있다는 것 자체를 잘모르겠다. 물론 주인은 역시 한국인은 아니다. 우리가 들어섰을 때 딱 한자리가 남아있다. 러시아인들이 이렇게 한국 음식을 좋아했나? 메뉴판을 살핀다. 휘는 음식점에 오기전에 라면을 시켜 먹고 싶다고 했는데...

메뉴판을 보고 나는 삼겹살을 일단 2인분 시킨다. 메뉴판의 pork가 삼겹살인줄 알았는데 종업원이 삼겹살은 메뉴에 없다고 pork가 아니라 삼겹살을 원하냐고 한다. 그렇다고 했더니 알았다고 한다. 김치찌게도 하나 주문한다. 이곳 트립어드바이져 평점이 높을 만하다. 깨끗하고 친절하다. 그리고 맛이 좋은 편이다. 모처럼 한국처럼 불판에 삼겹살을 버섯과 함께 구어서 먹는다. 휘가 첫맛을 보더니 "맛있는데요!"라고 한다. 언제 삼겹살이 맛없던적 있었냐며 한 달만에 불판이란 기구를 이용하여 고기를 구워먹는다. 러시아인들은 찌게 종류나 파전, 비빔밥 등을 먹는데 우리만 불판에 고기를 구우니 많이들 쳐다본다. 김치찌게 420루불, 삼겹살 1인분 510루불이다. 어찌보면 한국 고깃집에서 둘이 먹었을 때 가격이 더비싸다. 아무튼 모처럼 우리 부자 잘 먹었다.

저녁을 먹고 숙소로 걸어오며, 블라디보스톡의 대학로 같은 느낌의 Svetlanskaya 거리를 걷고 해변까지 나간다.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느낌으로 해변을 즐기고 있다. 이곳에 오니 확실이 여기는 휴양지구나라는 느낌이다. 호텔로 돌아오니 우리나라 EBS와 MBC가 나온다. 25일만에 듣는 한국 방송이다. 오랜만에 뉴스도 보고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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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은 마지막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는 날이다. 오늘 저녁 탑승으로 전구간 약 10,000km를 완성하게 된다. 오늘 아침은 느긋하다. 체크아웃 시간까지 룸에서 쉬다가 나가면 된다. 8시쯤 잠에서 깬다. 휘는 벌써 깨있다. 어제와 같은 조식을 먹는다. 작년의 중국 조식에 비하면 훨씬 좋다. 커피와 빵 종류면 아침으로 충분한데, 러시아는 각종 햄과 계란, 치즈 등이 다양해서 좋다. 이곳의 조식은 러시아 온중에 가장 떨어지는 수준이다. 휘와 한접시를 해치우고 룸으로 올라온다.

휘는 오랜만에 탕목욕을 하고 11시까지 뒹굴거린다. 11시에 모든 짐을 챙겨서 프론트로 내려간다. 프론트에 짐을 맡기고 홀가분한 몸으로 호텔을 나온다. 하지만 갈데가 없다. 2박3일의 하바롭스크는 관광객에게 더이상 볼거리가 없다. 트립어드바이져를 이용해서 우리가 놓친 관광사이트가 있는지 살펴보지만 없다. 이때부터 기차타기 전까지 무료한 시간이다. 두 세번은 돌아다녔던 거리와 중요 포인트를 돌아다닌다. 영화라도 한 편 볼까하여 극장에 가본다. 가장 대사가 적을 것 같은 아이스에이지3를 보려고 했는데 오늘 토요일이라 그런지 아이스에이지는 상영을 하지 않는다. 마트를 천천히 둘러보고, 레닌광장에서 아무르강가까지 걸어간다. 가면서 공원을 만나면 벤치에 앉아서 쉬고 움직이고 한다. 오늘은 햇빛도 따갑다. 러시아와서 별로 안탔는데 오늘 좀 타겠다. 점심은 한국식당인 Koreya로 간다. 갑자기 한국 라면이 둘 다 땡겨서 갔는데 오늘은 토요일이라 라면이나 카레는 없단다. 토요일은 간단하고 싼 요리는 않하는가 보다. 결국 나는 비빔밥, 휘는 볶음밥을 시킨다. 볶음밥은 김치볶음밥인줄 알았는데 그냥 고기 볶음밥에 매운 소스를 뿌린 것이다. 하지만 역시 한국식 음식이 좋다. 비빔밥은 고추장을 더 달라고해서 김치까지 넣어 비볐는데 러시아 친구들은 아마 매워서 못먹을 것이다. 서빙보는 친구가 고추장을 더 달라고 했더니 놀라는 눈치다. 아들 볶음밥도 가장 맵게 해달라고해서 다 먹는다.

점심은 맛있게 잘먹었는데, 이제 할일이 없다. 5시간 이상을 뭘하지 싶다. 공원에 앉아서 휘와 잡담도하고 핸드폰도 만지작거리고 시간을 때운다.

5시경 Pizza Town으로 이동하여 이른 저녁을 먹는다. 8시 출발 기차이기에 피자집에서 시간을 때우기로 한다. 아이스티인줄 알고 시킨 음료와 피자를 시키고 맥주도 두 잔 곁들인다. 7시까지 앉아있다가 호텔로 돌아와 짐을 찾고 기차역으로 와서 우리의 마지막 기차를 탄다. 4인실로 하바롭스크와 블라디보스톡만 운행하는 열차이다. 같은 방에는 할머니와 휘 또래의 손녀가 같이 탄다. 인사하고 간단히 우리의 여정을 설명한다. 휘도 나도 많이 지치고 힘들다. 일찍 자야겠는데, 일기는 써야 할 것 같아서 이렇게 날림으로 글을 적고 자려한다.

내일 아침이면 블라디보스톡이고 기차에서 내리면 누가 뭐래도 우리 부자는 시베리아를 횡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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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종반을 다가오고 20일이 넘어가면서 지치기 시작한다. 이제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은 많이 덥다고 하는데 그래도 식구들과 밥먹고 쉬고 싶다. 아침 8시경 일어나 티비를 만지작 거리지만 알아들 수 있는 방송은 음악방송뿐이다.

휘와 9시가 넘어 조식을 먹으러 내려간다. 조식은 그냥저냥 러시아에서 흔히 먹던 간단한 아침이다. 빵과 야채를 조금 덜고 푸딩을 하나 선택해서 먹는다.

샤워를 하고 킥보드를 끌고 나간다. 딱히 목적지가 있느 것은 아니다. 러시아의 건축양식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은 이미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에서 충분히 봤기에 하바롭스크의 오랜된 건축물은 이제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이곳의 사람들도 왠지 앞선 도시들에 비하면 촌스러워 보인다.

Gorodskoy 공원으로 목적지를 잡고 킥보드를 타고 출발한다. 아직 하바롭스크는 이런 킥보드가 거의 없다. 성인용 킥보드를 타는 사람을 하나도 보지 못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나 모스크바는 성인들이 많이 타고 다녀서 보기 좋았는데 여기는 보편화 되지 않았나 보다. 사실 길도 킥보드가 다니기에는 보도가 매끄럽지 못하고 페인곳이 많다. 확실히 공원도 많고 사람은 많지 않아 좋다.

공원을 한바퀴 둘러보고 아무르강가에 다시 나가본다. 하늘은 파랗고 공기는 덥지 않아 좋다. 이렇게 해가 내리쬐도 많이 덥지 않다. 킥보드를 타고 있으면 사람들이 얼마냐고 자주 묻는다. 사실 말이 잘 안통해서 뭐라 얘기해 주기도 힘들다. 레닌 광장으로 이동하며 하바롭스크 시내를 다녀본다. 인구 60만의 하바롭스크는 사실 볼거리가 거의 없다. 노보시비르스크와 큰 차이도 잘 모르겠다. 시내도 작다. 지금까지 다녀본 러시아의 도시는 모두 레닌광장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점심은 트립어드바이져를 확인하고 피자를 먹으러간다. 피자집은 피자만이 아니라 초밥과 간단한 일식을 겸하고 있다. 휘는 벤또를 선택하고 나는 피자를 선택한다. 둘다 맛도 있고 좋은 선택이었다. 피자집이름은 Pizza town으로 메뉴판에 주방장이 태극기와 일장기가 새겨진 옷을 입고 있어 인상적이었고 이름이 한국인이나 고려인의 이름이었다.

점심을 먹고 호텔로 돌아온다. 2시가 넘어있다. 어제 맡긴 세탁물도 얌전히 올려져있다. 휘와 호텔에서 쉰다. 나는 낮잠이 들었다. 낮잠을 자고 이 동네 쇼핑몰을 둘러보기로 한다. 두 군데의 쇼핑몰을 다녔는데 모두 크기가 고만고만하고 특색이 없다. 확실히 하바롭스크는 블라디보스톡에 밀려 정체되는 도시처럼 보인다. 쇼핑몰을 나와 저녁을 먹으러 움직이면서본 카바로브스키 극장에는 2차대전 종전 71년을 기념하는 고려인문화대축제가 8월 13일에 열린다고 한글이 병기된 대형 현수막이 걸려있다. 이런 곳에서 한글을 보고, 고려인들이 훌륭하게 지역 사회에서 활동하는 것 같아 뿌듯함을 느낀다.

저녁은 트립어드바이져에서 이곳 식당들 중 평가 3위를 한 식당을 찾아간다. 평들이 대부분 고루 좋아서 기대를 해본다. Kabachok이라는 동유럽식 식당이다. 가서 나는 치킨커틀릿을 휘는 돼지고기 볶음을 시킨다. 밥이 없어서 빵을 주문한다. 그런데 주문을 한지 한시간이 넘기고 재촉하자 음식이 나온다. 기다리느라 지쳐서 음식맛을 모르겠다. 그리고 야외 테이블은 모기가 달려들어 권하고 싶지 않다. 가격도 음식맛도 별로 였다. 차라리 점심을 먹은 곳이 더 좋았다.

9시가 다되어 걸어 호텔로 들어온다. 이렇게 오늘 하루도 지나간다. 여행도 몇 일 반짝 시간내서 갈 때 신나서 여러곳을 둘러보는 것이지 20일 넘게 장기로 들어서면 경외감이나 신선함이 떨어지는 것 같다. 더구나 한나라를 너무 오랫동안 다니고 있는 것 같다.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시내관광 위주이다보니 어느 순간 메너리즘과 식상함을 느낀다. 다음번 장기 여행은 렌트카나 손쉬운 이동 수단을 마련해야 겠다. 내가 정말 보고 싶은 좋은 풍경은 대중 교통이 미치지 않으면 움직이기 쉽지 않다. 다음번 장기 여행 프로젝트는 꼭 차량을 이용할 수 있는 곳으로 정하리라 생각해 본다.

내일은 저녁 8시경 기차를 타고 블라디보스톡으로 간다. 밤에타서 아침에 내린다. 이 구간을 이용하면 시베리아횡단열차의 전구간을 타보게 된다. 나의 버켓리스트 중 하나를 완성한다. 한국의 어머니와 집사람, 딸이 보고 싶어지는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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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경 눈을 뜬다. 화장실이 고장 났는지 승무원들이 분주하게 들락거려 일어난다. 화장실을 사용할 수 없다고 하여 옆 칸을 이용한다. 결국 내릴 때까지 우리칸의 화장실은 이용불능이다. 덕분에 세수도 양치도 못한다. 능숙하게 침구를 반납하고 우리가 내릴 하바로프스크역에 내린다. 여기 시간은 이제 한국과 같다. 다시 6시간을 거슬러 동진한 것이다. 이제 집에 갈 때까지 한국과 동일한 기간대에 들어섰다. 자동으로 시차 적응을 할 수 있겠다. 하바로프스크는 블라디보스톡과 함께 러시아의 극동 전진기지이자 극동 러시아의 최대 도시이다. 더구나 중국과 국경을 인접하고 있는 국경도시이다. 그럼에도 우리칸에는 내리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놀랐다. 대부분 블라디보스톡까지 가는 모양이다. 역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고, 하차 인원도 대도시라는 생각에 비해 많지 않았다.

한국에서 미리 예약한 아파트형 숙소는 취소하고 몇 일전 역 옆의 호텔로 변경하였다. 아파트형 숙소에서 음식도 해먹고 빨래도하고 하는게 좋았을지에 대해서 아직 잘 모르겠다. 어쩌면 처음 생각한데로 아파트형 숙소가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역에서 나와 100m이내에 숙소가 있다. 그건 참 맘에 든다. 배낭과 짐을 들고 다닐 필요가 없다. 8시도 되기전에 도착하여 체크인을 물어보니 당연히 안된다. 짐을 맡기고 휘와 오슬로 킥보드를 타고 시내로 나가본다.

어라! 킥보드를 끌고나오자 비가 오기 시작한다. 다시 숙소로 돌아가 킥보드도 맡기고 우산을 들고 나온다. 3일을 샤워도 못하고 머리도 감지 못해서 떡져서 모자를 썼다. 빨리 샤워하고 싶다. 이루크추크에서도 제대로된 샤워를 못해 여간 찝찝한 것이 아니다. 역 앞의 긴 공원을 걷는다. 공원이 마치 뉴욕의 센트럴파크처럼 도심을 관통하고 긴데 이름도 없다. 러시아는 곳곳에 좋은 공원이 많은 것이 부럽다. 일단 목적지를 하바롭스크의 자연사,향토사 박물관으로 잡는다. 공원 끝에 있는데 공원 길이가 2km는 되는 것 같다. 공원중간에 중앙시장의 입구가 있어서 어슬렁 거려 보지만 아침 일찍이라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둘러보기로 한다. 공원의 끝이 아무르강변과 맞다아있다.

이 아무르강은 남으로 내려가며 중국과 러시아의 국경 역할을 하고 있다. 중국으로 가변 이 아무르강은 중국은 쑹화강, 우리에게는 흑룡강이라는 이름으로 변한다. 강폭은 한강보다 넓어 보이며, 그 위용이 대단하다. 강변을 따라 사람들이 운동을 하고 낚시를 하고 있다. 하바롭스크는 이 아무르강과 우수리강이 합쳐지며 국경으로 변하기 전에 가장 넓은 삼각주에 위치하는 최대 도시이다. 중국과 국경을 인접해서인지 중국계 동양인들이 많이 보인다. 내가 알기로 고려인 후예들도 많이 사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실제 한국 국적의 교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강변을 휘와 걷다가 다시 도심으로 나온다. 박물관은 10시부터 개관이기에 아침을 사먹으려고 하는데 대부분의 식당이 10시나 11시 오픈이다. 그 흔한 KFC나 Subway도 보이지 않는다. 결국 길거리 핫도그를 2개 사서 아무르스키 동상이 있는 작은 광장 벤치에서 먹는다. 이 아무르스키는 동시베리아 총독으로 시베리아횡단열차를 처음 건설 계획한 사람이기도 하다 덕분에 우리 부자 기차도 잘타고 왔고 이렇게 옆에서 핫도그도 먹는다. 10시가 되어 박물관에 간다. 입장료는 인당 350루불이며, 두 개의 건물을 이용할 수 있다. 입구에는 중국인과 한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몇 있다. 특히 한국에서 오신 듯한 아주머니들이 계셔서 놀랐다. 이런 아침부터...

첫 건물의 박물관은 자연사를 주제로 화석과 동물 박제 등을 전시하였고, 두번째 건물은 이곳 하바롭스크의 과거 주인인 동양계 원주민들의 생활상과 의류, 도구 등을 전시하고 러시아의 유입과 발전상을 소개하고 있다. 사실 이땅의 주인은 몽골과 거란, 말갈계 유목 민족이었을텐데, 일제시대에는 많은 독립투사들께서 이곳에서 독립운동을 준비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중에서도 김알렉산드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공산/사회주의자 여성으로 독립운동을 하다 반혁명군에 아무르강변에서 총살당하고 버려진다. 아마 암살 전지현의 모델이었을지도... 그래고 하바롭스크의 중심가는 독립운동가 김유천 장군을 기려 김유천거리가 있다. 하지만 박물관은 그다지 특색이 없고 유물도 큰 흥미를 유발하는 것은 없다. 대략 1시간 30분 정도 둘러보니 내부 전시물은 거의 둘러 보았다. 휘와 이제 호텔로 들어가기로 한다. 아무래도 좀 씻어야 겠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 중앙시장에 들러본다. 고려인의 영향으로 시장안에는 김치와 고사리나물, 콩나물무침, 깍두기 등을 팔고 있다. 이곳으로 또 더한 사할린으로 강제 이주 되었을 우리의 선조들...그리고 이 척박한 곳에서 일가를 이뤄 이제는 고려인, 4, 5세들이 이렇게 한국을 잊지 않고 한국 음식을 만들고 팔고, 사먹고 있다. 나라가 힘이 없을 때 가장 불쌍한 것이 국민들 아니겠는가! 김치를 보니 저녁은 꼭 한국식당에서 먹자고 휘와 약속한다. 휘는 친구들 기념품을 사주고 싶다는데 정말 마땅한 것이 없다. 집에 식구들도 뭐 사줄게 있을까 살펴보지만 역시나 없다. 러시아는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에 사람이 서있으면 차량이 무조건 정차해야하는가보다. 우리가 횡단보도에 서기만하면 모든 차량들이 멈춘다. 횡단보도 건널 때 안심이 된다. 여지껏 러시아의 모든 곳이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에서는 차량들이 먼저 멈춰줬다.

호텔 프론트에서 체크인을 하고 룸으로 들어와 샤워를 한다. 룸은 생각보다 깔끔하고 만족스럽다. 호텔 프론트에 세탁서비스를 묻는다. 세탁기가 있냐고 물었을 때 3, 5층에 있다고 해서 양말과 속옷까지 가지고 3층에 가봤으나 다림질 시설 뿐이다. 메이드 아주머니에게 몸짓으로 물어보니 날 1층 프론트로 데려간다. 프론트 직원의 영어를 바라는 것 같은데, 프로트 직원의 영어도 사실 별로라서 결국 서로 모두 몸짓이다. 결국 세탁기는 없단다. 아주머니가 세탁 서비스를 해주고 300루불을 달란다. 그게 편하겠지...결국 우리돈 5,000원 정도를 주고 모든 빨랫거리를 맞긴다.

저녁은 한국식당에 가기위해 인터넷 검색을 한다. 위치가 잘 나오지 않는다. 한인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봐도 구글지도에서 찾기 힘들다. 결국 부산식당이라는 곳을 찾았다. 역 근처인 숙소에서 2.5km정도 거리이다. 휘와 열심히 킥보드를 타고 가본다. 이런! 문이 닫혀있다. 몇 일 내부 수리던지 아님 휴가 기간인 것 같다. 휘가 엄청 실망한다. 재빨리 트립어드바이져를 열어서 한국식당을 검색한다. 어라! 숙소 근처에 Korea라는 Korean restaurant가 있다. 다시 숙소로 이동하여 식당을 찾는다. 좀 외진 곳이지만 깨끗한 식당을 찾았다. 가서 메뉴를 확인하니 한국인이 운영하는 전통 한국식은 아닌 모양이다.

비록 노래는 한국음악을 틀고 티비는 한국 사진들을 보여주지만 아무도 한국말은 모른다. 그리고 손님도 모두 러시안이다. 한참을 메뉴의 사진을 들여다보고 가장 실패 확률이 적은 부대찌게와 제육볶음을 시키는데 제육볶음은 주방장이 안된단다. 결국 돼지고기 볶음을 시켰는데, 돼지갈비살을 양념해서 통으로 구워 내왔다. 맥주 한 병을 시키고 공으로 주는 보리차를 두 잔 마신다. 김치, 마늘쫑 등 밑 반찬과 함께 아들과 둘이 밥 세 공기를 먹는다. 물론 휘가 두 공기를 먹는다. 한국인 입맛엔 별로 이지만 여기는 어디까지나 현지인을 위한, 이곳에 맞게 변화된 한국식당이다. 이런 식당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세계 곳곳의 일식, 중식당을 보라. 모두 일본인, 중국인이 운영하는 집이 아니다. 오히려 현지인이 운영하는 집이 더 많다. 한국식 식당이라고 해서 꼭 한국인 입맛에 맞을 필요는 없다. 현지인들에게 맞으면 좋은 것이다. 그것이 한식의 세계화가 아닐까? 우리는 이런 비슷한 맛을 내는 식당에도 만족한다. 가장 맵게 해달라고 했음에도 한국에서 먹는 정도의 매움이거나  오히려 덜 맵다. 이렇게 저녁을 먹고 1,500루불을 지불한다.

다시 킥보드를 밀며 숙소로 돌아와 휘와 누워서 각자 편안히 쉰다. 내일은 뭘할지 특별히 정한 것은 없다. 내일일은 내일 일어나서 정하기로 맘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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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사정이 좋지 못해 사진은 추후 사정이 좋아지면 올리겠습니다.

오늘도 기차안에서 눈을 뜬다. 기차의 흔들림과 달리는 소리에 눈을 뜬다. 8시가 넘어 있지만 깨어 있는 사람은 이 객차에서 3사람 뿐이다. 나도 일어나서 간단하게 씻고 커피를 한 잔 타서 마신다. 특별히 할 것 없는 여유있는 아침이다.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본다. 휘는 계속 자고 있다. 어차피 일어나도 할 것이 없기에 깨울필요도 없다. 실컷 잠을 자고 일어나면 컨디션도 더 좋아지겠지.

밤사이에 앞자리 주인은 두 번이 바뀐다. 모두 조용한 남자들이 조용히 누웠다 나간다. 아침에 일어나니 앞자리에 아무도 없다. 오늘은 좀 편하게 가려나 보다. 휘도 일어나고 기차는 계속 달린다. 어제 밤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아침에도 제법 내린다. 덕분에 창밖의 풍경은 우울하고 차분하다. 어제는 하루 종일 멋진 풍경을 보여 줬고, 오늘은 자작나무와 소나무들이 시야를 가린다. 어제의 풍경에 비하면 오늘은 볼 것이 없다. 책을 보거나 만화를 보거나 핸드폰을 만지작 거린다. 어차피 인터넷이 되지 않기에 핸드폰은 금새 질려버린다.

낮에 옆에서 한참을 같이 온 모녀가 내릴 준비를 한다. 이르쿠추크에서부터 같이 왔으니 꽤 오랫동안 옆자리 였다. 그녀들이 내리는 적은 2분 정차하는 작은 역이다. 굿바이라고 서로 인사를 한다. 완전히 시골이다. 모녀가 책도 많이 읽고 교양있게 행동해서 도시 사람들인 줄 알았는데 다니러 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참 작은 마을에서 내린다. 러시아의 이런 작은 마을들은 3G도 터지지 않는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꽤 심심한 마을 일 것 같다. 모녀가 내리고 우리 앞과 옆까지 아무도 없다. 우리 부자가 6명이 누울 수 있는 침대 칸을 점령한다. 오후 동안 다른 좌석들도 빈좌석들이 꽤 생긴다. 대부분 각자 알아서 잠을 자거나 낮말을 맞추고 핸드폰을 드려다보며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저녁 8시가 넘은 시간에 정차한 역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탄다. 결국 우리 앞과 옆자리까지 모두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왔다. 아마도 내일 아침에도착하는 하바롭스크에서 다같이 내리겠지. 앞자리는 모녀와 손주까지 3명인데 5살쯤 되어보이는 남자 아이가 꽤나 번잡스럽다. 초코과자를 하나 주니 받아서 열심히 먹고 열심히 돌아다닌다. 아이 엄마는 그 또래의 남자애들 엄마처럼 꽤나 신경질적으로 아이를 다루고 있다. 천방지축 남자아이 그렇게가 아니면 통제가 힘들 것이다.

오늘의 기차에서는 특별한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마치 좀 더 긴 무궁화호 열차를 탄 느낌이었다. 이제 내일 하바롭스크에서 내려 다시 블라디보스톡으로 이동하는 10시간 정도의 기차를 타면 시베리아횡단열차라고 흔히 말하는 러시아 횡단 열차를 완성한다. 정말 큰 나라이다. 작년 중국에서는 늘 고속 열차를 타고 이동해서 그렇게 멀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이 열차는, 우리 부자 참 긴거리를 여행하는구나라는 느낌을 준다. 느낌 뿐만 아니라 실제지만.

오늘은 정차하는 역도 별로 없었고 정차해도 2분 정도였다. 내일은 하바롭스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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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늦게 기차에 올랐다. 맞은 편에 앉은 조용한 아주머니와 내 일정을 이야기하고(물론 손짓발짓으로) 글을 작성하고 누우려고 하는데 아주머니는 다음역에서 내리고 술이 취한 듯한 한무리의 남자들이 탔다. 그중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아저씨와 아들이 내 앞에 자리를 잡는다. 휘는 잠이 들었고, 그 아저씨 나에게 이름이 무엇이냐며 반갑게 악수를 청하고 러시아말로 한참을 중얼거린다. 물론 나는 한마디도 못알아 듣는다. 그리곤 잠이들었다.

아침에 느즈막하게 일어난다. 급할건 없다. 어차피 일어나도 누워도 기차는 하바로프스크로 나를 데려가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휘와 아침을 챙겨 먹는다. 나는 빵을, 휘는 도시락 라면을 선택한다. 그렇게 아침을 먹고 각자 하고 싶은 걸 한다. 휘는 전자책이나 만화책을 본다. 나도 별반 다르지 않다.

앞에 아저씨는 신나게 자더니 일어나 동료들과 한참 이야기하며 먹으며 지낸다. 아무래도 이 아저씨 계속 동료들과 보드카를 먹고 있는 것 같다. 나에게 웃으며 매우 친근하게 이야기하는데 알아들 수 가있나. 다만 술꾼이라는 것은 알겠다. 정류장에 잠시 서면 같이 담배피러  가자고하고 자꾸 악수하자고 하는 것도 습관이다. 그러더니 동료들과 투닥투닥한다. 아~ 시끄럽고 번잡스러워서 내려줬음 좋겠다. 다행이도 12시쯤 치타역에서 내린다. 시끄럽던 동료들도 모두 내린다. 아마 동네 사람들끼리 어디 다녀오는 길이었나보다. 나보고 먹으라고 빵도 2개 주고 가고 먹던 음료수도 몽땅 두고간다. 빵이야 손을 안댄 것이니 먹겠지만 음료수는 어쩌라고... 결국 음료수는 내가 버려주는 꼴이된다. 기차 출발전 아래를 보니 손자 주려고 산 것인지 메이드인차이나가 뚜렷한 옆구리에 끼고탄 비비탄 총 장난감 박스가 보인다. 이것도 두고같네... 역무원에게 두고 갔다고 하지만 어깨만 으쓱할 뿐이다. 잠시 후 열차가 출발하자 역무원이 뛰어와 장난감을 들고는 간다 아마 찾으러 왔나보다. 출발하는 기차에서 장난감 상자를 던진다. 술이 왠수다. 그 아저씨 일행이 내리자 역무원과 옆자리 아줌마도 좋아라한다. 그 후에 다른 덩치 큰 아저씨가 앞에 탔는데 타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계속 자고 있다.

열차는 계속 달리는데 숫자가 낮은 002호의 이기차는 전에 탔던 기차들에 비해 정차하는 정류장 수가 적은 것 같다. 아마 큰 역만 정차하는 열차인 듯, 4, 5시간에 한 번 정도 정차하는 것 같다. 이루크추크 이후부터 열차밖 풍경은 아주 근사하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 구간은 밤 기차여서 자느라 잘 모르겠고, 모스크바에서 노보시비르스크의 구간은 산은 없고 평지만 있었는데 기찻길 주위로 자작나무가 풍경을 방해해서 볼거리가 별로 없었다. 노보시비르스크에서 이루크추크는 아주 넓은 평야와 밀밭의 천지였다. 산도 나무도 거의 없었다. 오늘자 이루크추크에서 하바롭스크까지의 구간은 장관이다. 높지는 않지만 근사한 산과 하천과 강 그리고 푸른 초원이 같이 존재한다. 이렇게 멋진 곳에 사람사는 집은 가끔보이는 아주 작은 마을을 제외하면 없다. 이렇게 근사한 곳을 사람손이 닿지 않고 있으니 깨끗하고 근사하다. 아마 우리나라였으면 이런 여름에 온갖 피서인파와 장사인파로 장사진이었을 것이다. 물론 이렇게 커서야 장사진을 이룰 인구도 부족하겠다.

기차는 특별한 이벤트가 있지 않으면 조용하고 각자 할일을 찾아 할 뿐이다. 러시아인들은 낮말퍼즐이나 카드놀이 등을 하고 책을 보거나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는 사람이 많다. 물론 대부분 뭘 먹고는 바로 누워서 자고들 있다. 우리 부자도 간식 조금 먹고 자고, 책보고, 핸드폰을 만진다. 앞자리 새로운 아저씨는 조용한 사람인 것 같아 다행이다. 앞자리 동료의 복이 제일 큰 것 같다.

오후 쯤 이루크추크에서 같이 탄 학국인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들에게 가본다. 탈 때 옆 칸에 탔는데 한국말을 하고 있었다. 가서 별일 없냐고 묻고 아들과 20일째 여행중인데, 그래도 한국 남자 동료가 있는 것 처럼 말 걸어주면 다른 사람들이 쉽게 보지 않을 것 같아서 와봤다고 했더니 앳되보이는 여학생들이 고마워한다.괜한 오지랍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심적으로 젊은 친구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무슨일 있으면 서로 도와주자고 이야기하고 돌아왔다.

저녁으로 나는 도시락 사발면을 먹고, 휘는 주정꾼 이저씨가 준 빵을 먹어보더니 너무 맛있다고 두 개를 모두 먹어치운다. 방금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어서 70루불에 하나 사준다. 쥬스도 다 먹어서 객차에서 차장에게 150루불을 주고 오렌지 쥬스와 과자를 한 봉지 구입한다. 사실 객차 담당직원이 150루불어치를 사주면 객차와 책차사이에서 담배를 피게 해주겠다는데, 사실 안사도 필 수 있는 걸 알지만 어차피 사려했기에 반 농담으로 웃으며 사준다. 오늘 실적이 모자른가~

블라디보스톡으로 갈수록 사람들의 수준이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 유럽과 가까운 상트 페테르부르크 사람들이 가장 젠틀하고 세련됐었고, 점점 중앙아시아와 중국, 몽골과 가까와지며, 중앙에서 멀어져서 그런지 사람들의 교육 수준이나 매너가 거칠어진다. 그렇지만 눈에 보이는 정은 더 깊은 것 같아보이기는 하다.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톡까지 기찻길로 9,250km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까지 대략 700km정도 되니, 이 여정을 마치면 아마 10,000km를 기차로만 달리게 될 것이다.
Posted by 휘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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