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금 길을 떠난다. 오늘부터 6월23일까지 47일을 떠나는 장기여행이다. 방학에 아들과 또 떠나려했지만 이번은 아들은 학교에 남기로하였다. 중3이기에 공부가 더 중요하다고 한다. 결국 혼자 일정을 잡아본다.


이번 여행지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자길이다. 프랑스 생장에서 부터 스페인 산티아고까지 800km를 걷는다. 하루 25km 이상을 걸어야하는 강행군이다. 걷는 길이 멀기도하고 혼자서 너무 장기 여행이라 가족들의 걱정이 많다. 작년 당분간 너무 피곤한 배낭 여행은 지양해야 겠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잊은 모양이다.


내가 좋아하는 경유 비행기를 알아본다. 하노이를 거쳐 파리로 들어가는 비행편이 마음에 든다. 결국 스탑오버로 하노이에서 3박 4일을 여행하고 파리로 아침에 들어가는 비행기를 예약한다. 혼자서의 하노이는 여행의 곁다리이기에 선택하고나서 사실 조금 망설였다. 순례자길은 목적이 있기에 혼자도 괜찮지만 하노이에서의 4일을 잘 보내 수 있을지 모르겠다.


배낭 여행 횟수가 늘어날 수 록 준비는 점점 나태해진다. 결국 두 달 가까이되는 짐싸기를 여행 떠나는 어제 저녁에야 부랴부랴 준비했다. 물론 걷기 연습은 충분히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꾸준히 해오고 있었다. 최종 배낭 무게는 보조가방을 제외하고 7.5kg으로 준수했다.

새벽에 일어나 집사람과 아이들의 배웅을 받으며 공항버스 정류장까지 배웅을 받는다. 10시 비행기이기에 7시 30분에는 공항에 들어가야 했다. 혼자하는 비행은 필리핀에 있었던 2년간 충분히 경험했기에 오히려 부담이 없다. 연휴 막바지라 많은 사람들 속에서 수속을 마치고 수화물이 없는 나는 배낭을 짊어지고 입국장으로 들어선다. 제법 많고 다양한 짐이기에 입국 심사에 문제가 되지 않을까 걱정했으나 아무 문제 없이 탑승구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번은 처음으로 가장 먼저 비행기에 들어갔다. 운좋게 내가 일어나자마자 탑승수속을 시작해서 가장 먼저 기내에 입장했다. 4시간 20분의 비행이기에 창가 자리에 앉는다. 333배열인 비행기는 옆자리에 승객이 없어서 비교적 수월하게 올 수 있었다. 빈자리가 어의 없었음에도 혼자 탑승하는 사람은 나와 옆옆자리 남자 승객뿐이었나보다. 기내에서 맥주 2캔을 마시고 영화를 한 편 보니 어느덧 하노이 근처임을 비행지도가 표시한다.


베트남은 15일간 무비자이기에 좀 처럼 줄어들진 않아 오래걸렸지만 무사히 입국 수속을 마무리한다. 베트남 돈인 '동'을 환전하지 않아 ATM에서 돈을 찾는다. 유심을 구입하지 않아 환율을 알 수 없는데 금액 단위가 커서 얼마를 찾아야하는지 알 수 가 없다. 대약 유심가격이 500,000동 이하 인걸 알았기에 일단 500,000동을 찾아본다. 유심은 4일 8Gb에 300,000동을 받는다. LTE가 잘 터져서 속도가 나쁘지 않다. 300,000동이 15,000원이다. 대략 1,000원에 20,000동이다. 그래서 1,500,000동을 더 찾아 본다. 단위는 큰데 금액은 75,000원 정도이다.

공항 왼쪽 공항 버스 정류장에서 86번 버스를 타면 30,000동에 시내로 나올 수 있다. 보스도 크고 깨끗, 친절해서 좋다. 버스 정류장까지 오는 동안 수많은 택시와 미니버스 기사들에서 호객을 당해야 했음은 물론이다.

86번 버스를 타고 차장에게 30,000동을 지불하자 내가 갈 호텔을 확인하고 지도와 간단한 베트남어 회화가 적인 지도를 주며 내릴 곳을 체크해 준다.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내릴때도 알려주고 어떻게 걸어가야하는지도 체크해 주었다. 하노이의 인상이 좋다.


혼자 묵는 숙소이기에 저가 3성급 호텔을 예약했다. 고객평이 워낙 좋아서 선택한 곳인데 시설은 조금 낡았어도 직원들이 친절하고 영어도 잘해서 만족스럽다. 숙소 위치는 호엠끼엠 호수 근처에 있고 주변에 볼곳과 먹을 곳이 많다. 시장 중간에 위치하여 찾기는 어려웠다. 물론 구글 지도 덕분에 큰 고생은 없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동대문 상가 중심에 있는 5층 건물의 호텔이다.

일단 숙소에 들어와서 짐을 풀고 호엠끼엠 호수에 걸어가 본다. 주변 시장들도 둘러보며 걷는다. 이렇게 낮선 곳에 혼자 헤메고 있으니 우리 휘가 그리워진다. 이녀석 언젠가는 다시 나랑 장기 배낭여행을 할까? 물론 이제 집사람과 딸과 함께하려고 한다. 하지만 아들이 있었으면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가 없다. 일요일 오후의 호수 근처는 관광객과 이곳의 젊은이들로 북적인다. 하노이 젊은 친구들이 버스킹도하고 군무를 하는 팀도 있고 나름 북적이는 것이 재미가 있다. 호텔로 돌아오며 반미를 길거리에서 사먹는다. 쌀로 만든 바게트에 햄과 계란 등을 넣고 제법 근사하게 만들어주는데 가격은 30,000동으로 1,500원 정도이니 매우 저렴하다. 베트남은 전반적으로 물가가 착해서좋다.

걸어다니며 신카페라는 여행사를 찾아서 내일 짱안투어를 신청한다. 하롱베이도 가보고 싶은데 편도 5시간은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고해서 일단 짱안으로 정한다. 아침 8시경 호텔로 픽업을 온다고 한다. 가격은 750,000동을 카드로 결재한다. 생각보다 50,000동 정도 비싸지만 2,500원 정도는 익스큐즈하기로 한다. 내일은 아침부터 짱안 투어를 다녀오면 저녁에 도착할 것이다.

숙소에서 좀 쉬다가 식구들과 통화하고 반미를 먹어 별로 배가고프지는 않지만 다시 나가본다. 야시장들이 준비중이고 호수 근처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주말 저녁을 즐기고 있다. 나도 베트남 커피를 한 잔 마신다. 엄청 달다. 베트남은 커피를 아주 달게 마신다고 들었는데 역시나 달다. 단것이 몸에 들어가니 정신이 난다.

저녁의 시장을 둘러 다니다 노점 식당에 혼자 자리를 잡는다. 워낙 정신이 없는 곳이다. 소고기 볶음 쌀국수를 주문하고 Tiger beer를 2병 마신다. 총 100,000동으로 5,000원이다. 싸다. 맛도 우리 입맛에 잘 맞을 맛이다.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하고 저녁 8시가 조금 넘어 숙소로 돌아와 샤워 후 이글을 적는다. 사실 일기를 적을까 말까 많이 고민한다. 과연 산티아고에서도 이렇게 실시간으로 일기를 적을 수 있을까? 지금도 피곤하고 귀찮아서 내용이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는 일지식의 글이다. 느낌이란 배제되 마치 조서의 하루 일과를 적는 것 처럼... 하루 정도는 이렇게 늘어지다가 조금씩 여행자 모드로 적응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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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여름방학 둘 만 떠나는 두 번째 배낭여행이 오늘로서 마무리라고 봐야할 것이다. 내일은 아침에 일어나 공항으로 이동하여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일정이기에 실질적으로 러시아에서의 활동은 오늘이 마지막일 것이다. 특별히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저 휘가 조금 더 내 힘이 필요로 할 때 힘이 되어 같이 여행하는 것, 그것으로 만족한다. 나 역시 휘와 같이 이렇게 여행함으로써 많은 의지를 하고 있다. 휘는 이번 여행동안 작년보다 더 성숙한 모습을 보여줬고, 나도 크게 의지를 할 수 있어서 부자간에 정에 큰 도움이 되었다. 작년과 올해의 아들의 변화도 느낄 수 있었고, 좀 더 아버지로써 분발해야 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아빠로써 아들이 작년보다 많이 성장했구나를 느낀다. 작년 사진과 비교해 일단 키가 이제는 나보다 커지는 시기다. 이녀석이 이제는 걸을 때 나에게 어깨동무를 많이 건다. 많이 컸다.내년에도 아빠와 배낭여행을 하겠냐는 물음에 휘는 "글쎄요."라며 회피하고 있다. 작년, 올해 모두 고생을 많이 시켜서 그런가? 아님 이제는 방학을 또래들과 즐기고 싶은 걸까? 나 역시 이제 이런 배낭여행은 힘들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배낭을 짊어지고 이렇게 여행하는 것이 기간이 쌓일 수 록 힘에 부침을 느낀다. 물론 배낭만 짊어지고 다닐 뿐이지 호텔에서 자고, 특별히 돈 걱정 않하고 식사를 하는 이런 여행이 과연 배낭 여행인지도 모르겠다. 젊은 친구들 처럼 아끼고 많이 몸을 쓰며하는 여행은 무리라고 생각된다. 내년엔 딸을 데리고 여행을 해볼까? 아마 다음 여행부터는 조금은 더 편한 여행으로 변화하지 않을까 싶다.

아침 조식을 먹고와서 시내로 나가본다.

 블라디보스톡도 관광객을 위한 시내는 작다. 대부분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거래내에 있다. 중국인 뿐 아니라 한국인도 매우 많다. 러시아 여행 전체 일정 중 가장 난이도가 낮은 도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주변 상가나 식당 등이 중국인과 한국인을 많이 상대해본 노련함이 있다.

휘와 일단 독수리 전망대라 불리우는 블라디보스톡 해안가 가장 높은 곳을 올라가 보려한다. 전망대까지 케이블전차가 다닌다고 읽었는데 구글 지도로 전망대를 검색하니 걸어가는 길을 안내한다. 우리 부자 그것도 모르고 걷다가 이건 아닌 것 같아서 우리나라 인터넷 검색을 한다. 오늘은 하늘이 맑아서 매우 덥다. 러시아와서 가장 더운 하루이다. 역시나 케이블전차를 타는 곳은 Golden bridge 아래 도로 근처에 있다. 다시 휘와 내리막을 걷는다. 찾기가 어려워 지나가는 러시아 남자에게 케이블전차역 사진을 보여주자 가던 길을 되돌아 한 블럭을 같이 걸어가는 친절을 배풀며 타는 곳을 알려준다. 더운데 너무 고마워 둘다 고개를 숙여 "쓰바시바" 하며 인사한다. 러시아인들 많이 무뚝뚝하지만 깊은 속내는 따뜻하고 순진하다.

전망대 올라가는 케이블전차는 인당 편도 15루불이다. 사실 올라가는 높이는 별로 높지 않다. 다만 걸어가는 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전망대에 오르자 다리를 전망하며, 도시가 넓게 펼쳐진다. 오늘 시야가 좋아서 제법 근사한 풍경을 제공한다. 전망대에 오른 다른 이유도 있다. 여기 기념품샾이 물건이 다양하다고 해서 구경도 같이 할 겸 올라왔다. 물건을 구경하고 간단한 악세사리 몇 가지를 구입한다.

내려와서 버커킹에서 점심을 먹는데 주위가 온통 한국인이다. 여기 한국인이 정말 많다. 종로 버거킹인지 블라디보스톡 버거킹인지 헛갈린다. clever house에 들러 한국인들이 잘산다는 몇 가지 물품을 구입하고 숙소로 돌아온다.

휘에게 오늘 저녁은 전통 러시아식 샤슬릭을 먹자고 제안한다. 그리고 휘가 검색하여 데리고가라고 부탁한다. 저녁 무렵 츄다데이라는 샾에 가서 구경을하고 휘가 고른 러시아식 레스토랑에 찾아간다. 나름 트립어드바이져 점수도 높은 집을 잘 골랐다. 우리는 종업원에게 샤슬릭을 주문한다.

휘는 양고기 샤슬릭이 있냐고 물었는데 종업원이 있다고해서 양과 돼지 샤슬릭을 주문한다. 하지만 양은 없었고 뭔가 주문이 꼬여 돼지 샤슬릭 하나만 주문이 들어간 모양이다. 돼지 샤슬릭 하나에 포크가 두 개 나왔다. 이런 양고기를 기다리다 아무래도 잘못된 것을 눈치 채고 재주문을 하여 하나, 하나 따로 돼지 샤슬릭을 먹는다. 사실 맛이 없는 것은 아니였지만 비싸고 양도 별로이다. 내가 원한 샤슬릭은 알마티에서 먹은 바로 그 샤슬릭이었다.

휘 역시 알마티의 샤슬릭이 푸짐하고 맛도 훨씬 좋았다고 한다. 알마티 샤슬릭은 4,000원 정도에 정말 근사한 음식이 나왔었는데, 여기서 10,000원이 넘으면서 맛도, 양도, 비쥬얼도 재료 종류도 떨어진다. 다시 알마티에 가서 샤슬릭을 먹고 싶다. 물론 지금 알마티에서부터 다시 여행을 시작하겠냐고하면, 다리가 풀릴 것 같다.

숙소로 돌아와 짐을 정리한다. 이제 전자기기와 세면 도구만 배낭에 넣으면 끝이다. 내일 일어나 씻고 공항으로 공항철도를 타고 이동하면 저녁은 식구들과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어머니, 집사람, 슬이가 보고 싶다.

휘는 러시아 불곰국 형님들에 대해서 선입견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처음 러시아 여행을 제안했을때 뭔가 미지의 세계같은 느낌으로 응했다고 한다. 사실 휘에게 '다음 여행은 아프라카?'라고 하자 눈을 반짝인다. 지금은 러시아도 사람 사는 곳이고 좋은 사람이 많은, 두려움 보다는 친근함이 남는 곳이라 한다. 중국보다는 뭔가 야생적인 혹은 남성적인 느낌이었던 것 같다. 휘는 여전히 알마티가 가장 정이 간다고 한다. 우리 부자 여행 초기에 힘이 남아 가장 많이 돌아다녔던 곳도 알마티였고, 여러 사람과 부딪쳤던 곳도 알마티였다. 세련된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 중간 쉼 단계였던 노보시비르스크, 바이칼의 이루크추크, 아쉬운 하바롭스크 그리고 한국인이 많아서 반가웠지만 나중엔 살짝 불편함을 느꼈던 블라디보스톡까지 우리 부자 잘 다녔다.

가장 오래 머문곳은 누가 뭐래도 기차안이었다. 그곳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 모두 한 곳에서 자고, 먹고, 씻고, 싸고 1차적인 인간 활동을 같이한 사람들이다. 러시아인들은 예의도 있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것이 몸에 배어있는 사람들이었다. 내 생각과 실제가 많이 달랐던 사람들... 훨씬 좋은 사람들이었다. 아마 다시 시베리아횡단열차를 이렇게 오래 탈일은 없을 것이다. 이제는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던지 차량을 이용해 이동하겠지. 하지만 아마 평생 이렇게 오래 아들과 한공간에 의지하며 딱붙어 지내는 것은 이 기화말고는 앞으로 힘들 것이다. 좁은 기차안에 만 8일을 딱붙어 있었다. 그래서 아비로써 좋기도 했다.

아들의 청소년 시절 한 페이지를 둘만의 호흡으로 함께 할 수 있었어서 행복한 여행이었다. 

Posted by 휘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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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이 소란스러워 5시도 되지 않아 눈을 뜬다. 앞자리 할머니와 손녀가 아침을 먹고, 짐을 싸고 있다. 아직 블라디 보스톡에 도착하려면 3시간도 더 남았는데... 다시 잠을 자려고 하지만 쉽게 잠에 들지 못한다. 결국 6시경 완전히 일어나 씻고 창밖을 본다. 앞자리 가족은 우수리스크에서 내린다. 많은 사람이 우수리스크에서 내려서 나도 기차에서 내려 본다. 우수리스크 연해주의 도시이자 우리나라 고려인과 독립운동의 메카. 중국 하얼빈과 북한 두만강의 철로가 이어지는 중요 거점이다. 알기로 1900년대 이전에 러시아가 블라디보스톡을 부동항으로 개발하기 전에 가장 중요한 러시아 극동아시아의 중요 거점이었던곳. 발해의 유적이 있고 고려인 문화센타가 있는 곳으로 알고 있음에도 여행 말기인 오늘, 내일은 우수리스크를 둘러볼 기운이 나지 않는다. 여행 초기였다면 아마 오늘 부지런히 블라디보스톡을 걸어다니고, 내일 우수리스크를 둘러봤을 것이다.

이제 기차는 조용하다. 많은 사람이 내리고 종점인 블라디보스톡까지 가는 사람을 제외하면 더 타는 사람은 없다. 휘와 발을 뻗고 창밖을 본다. 그래! 시베리아횡단의 마지막을 아무도 없는 방에서 우리부자만 느긋하게 즐긴다. 이제는 기차밖 풍경이 우리나와 흡사하다. 산에 자라는 나무며 풀들이 마치 우리나라 무궁화 열차를 타고 창밖을 보는 것 같다. 우리나라와 가장 가까운 유럽 풍경이라는 블라디보스톡이, 꺼꾸로 내려오는 나에게는 한국과 가장 닮아있는 도시처럼 느껴진다.

기차가 멈추고 내린다. 드디어 9,259km의 단일 노선을 완주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합하면 10,000km. 먼 길이다. 기차에서는 특별히 하는 일도 없었건만, 어제부터 많이 지쳐있다. 아마도 여행의 끝을 바라보고 있으니 긴장이 느슨해지고 정신적으로 풀어져서 몸이 반응하는 것 같다. 비도 살짝온다. 확실히 블라디보스톡은 러시아에서 여름이 가장 더운 도시인가보다. 비가 살짝오는데도 습하고 덮다는 느낌이다. 다른 도시들은 이런 날씨에 쌀쌀했는데... 휘에게 중학생 시절 좋은 선물을 한 것 같아 뿌듯하다. 나중에 휘가 크면 다시 이렇게 단둘이 여행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 과연 휘가 20대에 친구들을 제치고 나를 데리고 여행을 계획해 줄까?

호텔을 찾아간다. 기차역에서 멀지 않다. 기차역 주변이 중심가이니 호텔의 위치도 좋다. 바닷가 바로앞에 제법 큰 호텔이다. 체크인은 준비가 필요하다고 해서 휘와 아침을 먹으러 나가본다. 아침을 부페식으로 먹고 싶은 것을 고르고 계산을 하는 역앞 식당에 들어간다. 가격만 비싸고 맛도 없다. 이곳 블라디보스톡은 중국 단체 관광객의 절정이다. 다른 도시들도 많았지만 여기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다. 거리거리마다 중국 단체 관광객들의 큰소리로 아찔하다. 더불어 한국인 단체 관광객도 많다. 그렇다 보니 길에 동양인이 많다. 특히 백화점이나 마트에 들어가면 온통 주위는 중국말이다. 백화점 보석 코너나 화장품 코너는 중국인이 점령했다.

블라디보스톡의 요트마리나에 가본다. 큰 마리나는 아니지만 우리나라 요트대회에서 자주봤던 타임머신이나 티뷰론도 계류해있다. 늘 ORC 우승을 다투던 요트들이다. 이렇게 본래의 자리에서 만나니 반갑다. 확실히 블라디보스톡은 수영할 수 있는 수온을 가진 유일한 바다, 러시아인들에게는 최고의 휴양지이다. 본국내 관광객들도 많은 것 같아 모처럼 북적이는 러시아를 다시 만난다. 모스크바 이후 가장 활기있는 도시처럼 보인다. 기차에서 볼 때는 우리나라와 많이 닮은 자연을 가졌다고 생각했는데 시내는 또다른 러시아이다.

1시가 넘어 체크인을 하고 룸에 들어가 샤워를 한다. 그리고 시내를 나가본다. 블라디보스톡도 사실 관광을 목적으로 찾을 만한 곳은 별로 없다. 다만 새로운 분위기와 맛과 풍경을 느껴보고 싶어하는 것 같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느끼고, 본 것이기에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큰 흥미 유발을 하지 못한다. 흔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붉은광장이라고 알고있는 중앙광장은 일요일인 오늘 자동차 오디오 튜닝 경연대회를 하는지 온갖 튜닝을한 자동차들이 귀가 떨어져라 노래들을 틀어놓고 자랑들을 하고 있다. Golden Bridge 밑에도 가본다.

나도 휘도 빨리 지치는 것 같아 제대로된 한국음식을 먹고 싶다. 트립어드바이져를 통해 가장 순위가 높은 한국 음식점을 찾아간다. 식당 이름은 Korea House. 트립어드바이져의 안내가 없다면 이런 곳에 식당이 있다는 것 자체를 잘모르겠다. 물론 주인은 역시 한국인은 아니다. 우리가 들어섰을 때 딱 한자리가 남아있다. 러시아인들이 이렇게 한국 음식을 좋아했나? 메뉴판을 살핀다. 휘는 음식점에 오기전에 라면을 시켜 먹고 싶다고 했는데...

메뉴판을 보고 나는 삼겹살을 일단 2인분 시킨다. 메뉴판의 pork가 삼겹살인줄 알았는데 종업원이 삼겹살은 메뉴에 없다고 pork가 아니라 삼겹살을 원하냐고 한다. 그렇다고 했더니 알았다고 한다. 김치찌게도 하나 주문한다. 이곳 트립어드바이져 평점이 높을 만하다. 깨끗하고 친절하다. 그리고 맛이 좋은 편이다. 모처럼 한국처럼 불판에 삼겹살을 버섯과 함께 구어서 먹는다. 휘가 첫맛을 보더니 "맛있는데요!"라고 한다. 언제 삼겹살이 맛없던적 있었냐며 한 달만에 불판이란 기구를 이용하여 고기를 구워먹는다. 러시아인들은 찌게 종류나 파전, 비빔밥 등을 먹는데 우리만 불판에 고기를 구우니 많이들 쳐다본다. 김치찌게 420루불, 삼겹살 1인분 510루불이다. 어찌보면 한국 고깃집에서 둘이 먹었을 때 가격이 더비싸다. 아무튼 모처럼 우리 부자 잘 먹었다.

저녁을 먹고 숙소로 걸어오며, 블라디보스톡의 대학로 같은 느낌의 Svetlanskaya 거리를 걷고 해변까지 나간다.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느낌으로 해변을 즐기고 있다. 이곳에 오니 확실이 여기는 휴양지구나라는 느낌이다. 호텔로 돌아오니 우리나라 EBS와 MBC가 나온다. 25일만에 듣는 한국 방송이다. 오랜만에 뉴스도 보고 쉰다.
Posted by 휘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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